밀양 (Secret Sunshine)

감독 이창동 출연 전도연, 송강호 개봉 2007 대한민국, 141분 평점

"밀양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비밀 밀(密), 볕 양(陽), 비밀스러운 햇볕. 좋죠?”

가장 평범한게 가장 어렵단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까.

평범하기 때문에 자주 보와왔을 것이고, 익숙할 것이고, 그냥 지나치기 쉬울 것이다.

느끼고 깨닫고 알아채기 힘들다. 햇빛이 비추고,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느끼기 힘든 것처럼.

'밀양'은 정말 평범하다.

옛날 옛날 이야기도 아니고, 먼 미래 이야기도 아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간, 공간의 이야기다.

 입고, 먹고, 보고, 듣는 것 모두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마치 텔레비전을 보다가 추리닝 바람으로

무심코 집앞에 나왔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다른 영화들처럼 짜릿짜릿한 감동이나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액션이나 스릴도

가슴 떨리게 하는 BGM도 없다.

전도연의 '신애'와 송강호의 '종찬'은 정말 평범하다. 너무 평범해서 재미가 없을 정도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그리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처럼, 옷차림부터 하는 일, 성격까지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겪기는 힘든 일이다. 

불행은 겹쳐서 일어나기 쉽다. 불현듯 다가온 불행에 속수무책이기 마련이고 그 후에 정상적으로 살아가긴

힘들테니까. 한 번 넘어지면 두 번 넘어지긴 그 전보다 쉬워진다. 사람들은 그렇게 무너져 내린다.

시나브로. 서서히. 조금씩. 하나하나 잃어간다.   

무너져 내리는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처절하다. 눈앞에 닥친 불행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Œf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자신의 인생이 흘러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이 무너뜨린 인생보다 어쩔 수 없이 무너져내린 인생이 더 가슴아프다.

'신애'의 인생이 가슴아픈건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의 죽음에도, 피아니스트라는 자신의 꿈이

무너진 것에도, '준'의 죽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아무에게도 위로 받지 못한다. 신에게서도, 사람에게서도, 햇볕에게서도.

"만약에.....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크시다면요..."

그녀에게 마음으로 한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 그녀가 너무 평범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태연한 척 하는 것도,

자신의 불행에 신에게 기대보려는 것에서 부터 실망하는 것도,

웃는 것도, 우는 것도, 그 불행의 끝에 서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수가 없다구요."

'신애'는 자신이 처한 절망 속에서 겨우 찾은 탈출구인 신에게서도 사람으로서 한계를 느낀다.

그럼으로 결코 자신의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아들의 죽음에 절망하던 그녀가 종교를 통해

행복을 얻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모습이 극적이고 미친 것처럼 말도 안되는 만큼,

신으로부터 얻은 행복이 깨어지는 순간도 극적이고 미친 것처럼 보인다. 아니 미쳐버린다.

반대로 그 미친 모습이 오히려 정상일지도 모른다. 절규하고 흐느끼는 것이 웃고 행복해하는 것보다는 정상일지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궁상맞고 추잡해보이는 생활 속에서, 절망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문득 문득 드는 생각이다.

왜 살아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지만 가장 더러운건 그러면서도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절망하면서도 살아있는 것이고, 저주하면서도 살려고 바둥대는 것이다.

죽으려고 물 속에 들어갔다가도 다름 사람을 죽이더라도 살려고 하는 모습.

눈물 흘리면서도 살고싶어서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발견할 때

비오는 거리에서 달팽이를 밟은 느낌처럼 역겹다.

그런 시궁창같은,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 지금 이 순간이 저주스러울 때,

 사람이 싫어서 내가 사람이라는 것 조차 경멸스러울 때,

이런 상황 속에서 배고픔을 느끼고, 목마름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때, 나라는 존재에 대해 구역질이 날 때,

내가 가장 추한 상황에서 거리낌없이 다가갈 사람이 있을까.

'신애'와 '종찬'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건 신애가 무너져내릴 때

옆에 종찬이 서 있어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건 사랑이 가지고 있는 모습의 한 형태이지만,

이 사랑의 일부에서도 세상의 모든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사랑도 있는 것이다.

언제나 누군가 내 옆에 서 있어준다는 건,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다.

더욱이 아무도 날 바라봐 주지 않을 때는.

정의내리는 것은 주체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상황에도 틀리지 않는 정의는 없다.

가장 정확한 정의는 자신이 맞다고 믿는 것이다.

그처럼 세상에 수많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있지만, 가장 정확한 정의는 내가 맞다고 믿는 것이 될 것이다.

밀양에서의 사랑은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항상 옆에 서주는 것.

사람은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매일 매일 똑같은 것이다. 식상함이다. 

반복.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젠가 느꼈던 감정이고, 언젠가 느낄 감정이다.

새로운 건 하나도 없다. 누군가 살아갔던 인생이고, 겪었던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매시간이 새롭다. 특별하다.

반복에서 공감과 친숙함을 느낀다.

"똑같아예, 딴데하고. 사람사는 데 다 똑같지예 뭐."

밀양이 어떤 곳이냐는 물음에 '종찬'은 계속 똑같은 대답만 한다.

다른 곳과 똑같은 곳. 밀양.

영화에서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곳과 똑같지만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나에게 엄습해왔을 때

어찌할 수 없는 불행으로 다가오는 것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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