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 수필 - 일락서산
1972년 5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중편 소설. 연작 장편 <관촌수필>의 첫머리에 나오는 작품
♣ 핵심정리 ♣
• 갈래 : 중편 소설, 연작 소설, 사실주의 소설
• 배경 : 1970년대 충청도 보령 관촌 마을
• 시점 :
• 경향 : 사실주의
• 문체 :
• 제재 :
• 주제 :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에서 퇴락한 세계(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1970년대의 황폐한 현실 을 비판하고 전통적 삶의 미덕 회복
• 등장인물
할아버지 : 최후의 이조인(李朝人)이라 할 만한 엄격한 양반 정신 소유의 소유자. 손자에게 대소 범절과 글을 가르치며, 관촌 마을의 큰어른으로 존재. 가세가 기운 후에도 그러한 반상적 질서의 엄격함은 고스란히 남아 서술자의 유년 시절을 지배
아버지 : 할아버지에 비해 새시재의 인물로 등장. 봉건제도 철폐를 외치고 읍내에서 강연을 했으며 자주 경찰에 의해 검속이 되곤 했던 좌익 인사.
어머니 : 몰락한 가문을 지탱해 온 의지의 여인, 전통적 현모양처의 여인상.
나 : 과거를 회고하는 관찰자적 인물
♣ 소설의 흐름 ♣
1. 성묘를 위해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왕소나무가 사라진 걸 보며 가슴아파 한다. 할아버지는, 이지함 선생이 이 왕소나무를 심어 놓고, 이 곁에 철마가 지니면 마을 사람들이 타관살이를 할 거라고 예언했었다면서, 철마를 막지 못해 이렇게 모진 세상을 겪는다고 말했었다. 차창을 스쳐 가는 고향의 옛 집이 추레한 것에서도 아픔을 느낀다. 나는 실향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2. 할아버지의 산소부터 성묘해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산소는 걸어 하룻길이 벅찬 곳이다. 읍내 외척을 찾아 숙소를 정하고 가까이 있는 고향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마을은 옛 모습을 가진 게 하나도 없다. 18년 동안이나 살았던 마을에서 이방인임을 느낀다. 골목을 벗어나 과수원 울타리를 지나면 대대로 지어 오던 터앝이 나온다. 맑은 물이 흐르던 개울은 수채가 되어 있고, 옆으로 블록집들이 들어서 있다. 울타리를 돌아 들뜬 마음으로 밭두둑으로 뛰어들어 문득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당신의 헛묘(假墳墓)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이지만 어릴 때 너무나 자주 보던 광경이다. 깊은 한숨을 쉬며 칠성바위께로 간다.
3. 칠성바위 밑에 헛묘를 스스로 만들어 장차 잠들 유택을 보살피며 망연히 서 있던 할아버지를 보며 숙연해지던 기억은 이십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선명히 남아 있다.
4. 할아버지는 자신의 분묘를 명당에 앉히기 위해 지관과 함께 뒤졌고, 선조가 잠든 선산도 마다하고 이 황토밭 바위 밑에 묘를 쓴 것이다. 이 바위들이 북두칠성 모양으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묘를 종산으로 옮겨 드렸던 것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헛묘를 썼던 자리는 고구마밭이었고, 곁에는 쓰레기장, 닭장, 변소가 지저분한 집들이 몇 채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5. 등성이를 오를수록 옛 집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마당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낯선 채 옛날과 같이 있었다. 죽은 감나무 생각도 한다. 휘어지게 감을 달던 나무는 어머니가 세상을 버릴 때 갑자기 죽었다. 사람들은 어머니와 운명을 함께 한 것이라고 했다. 고향을 떠날 때 그 나무를 두고 떠난다는 것이 서러웠다. 벤 그루터기에 낫을 꽂아 두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도 받아들였다. 장작을 패 쌓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넓기만 했던 정원과 뒤란, 건물들을 바라보며 회한에 잠긴다.
6. 등성이를 내려오면 마을이다. 아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지 않기로 한다. 그 때도 시종 반말로 대했던 터라 만나기가 껄끄러운 것이다. 할아버지는 양반의 가문이고, 마을의 최고 어른으로서 권위를 중시했다. 따라서 나에게도 반말을 쓰도록 했다. 그러니 나에게 친구가 있을 턱이 없었다. 모두를 나를 꺼렸고, 잡것들과는 함께 놀지도 못하게 했었다. 6ㆍ25의 난리로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고, 이제 어른도 안 계신데도 아이들은 나를 꺼렸다. 나도 그것이 몸에 배었던 것이다.
7. 읍내로 향하려다 아쉬움이 남아 옛 집 사랑 마루 앞마당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 본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명당이라고 했다. 줄곧 기울기만 했던 가문의 명예를 변명삼아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의 환영이 또 떠올라 눈시울이 젖는다. 함실문 틈으로 가마솥이 보이자 엿 고던 생각을 한다. 할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안 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군입거리를 장만해 두셨다. 벽장 가득 온갖 먹을 거리들이 가득했었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남달랐다. 할아버지를 위해 시식과 절식을 꼼꼼히 챙겼다. 내가 보채면 할아버지는 갱엿을 숟가락 가득 감듯이 떠 주시곤 했다.
8. 바깥채의 허드렛방은 내가 무서워 출입을 꺼리던 방이다. 거기에는 선대로부터 내려오던 제구, 족보, 전적들이 보물인 양 쌓여 있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쓰실 관과 상수(喪需)가 있었다. 나는 공포감에 진저리를 치곤 했었다.
9. 6ㆍ25가 난 뒤 우리 집은 망했다. 아버지가 형을 먼저 보내고 난 뒤 상심으로 이어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임종을 못 했다. 할아버지는 족보를 간직하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당신 대에서 벼슬이 끊어진 것이 한이 되어서 족보에 매달렸는지 모른다. 비록 벼슬은 못 했지만 그 기개와 가문에 대한 명예심은 대단했다. 끝까지 고풍을 간직하셨고 권위주의적이었다. 할아버지의 직함은 서원의 직원(直員)이셨는데, 마을의 정신적 지주였고, 그에 따른 반상 의식도 투철했다. 서원의 수복(守僕)들이 집으로 찾아올 때 손님이라는 말도 못 쓰게 했고, 언제나 반말로 대하게 했다. 양반 토호의 가문과 선비의 기풍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0. 아버지는 여러 모로 할아버지와 대조적이었다. 사대부가의 후예임을 대견해 하지도 않았고, 회고조의 가풍과 실속 없는 사상을 스스로 뒤집어엎었다. 무산 계급의 옹호와 서민 대중의 사회적 위치를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연설을 하고 앞장서 실천을 주도했다. 한참 후에는 그것이 변형되어 남로당과 합세하게 되었고, 할아버지와 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1. 그렇게 세월하기 몇 해 뒤에는 아버지가 구금되는 영어 생활이 많아져 사랑 풍경은 모순이었다. 할아버지의 방에는 늙은 노인들이 난세를 성토하며 소일했고, 아버지 방에서는 할아버지 방의 늙은이들보다 더 행색이 초라한 농사꾼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서로 동지라 불렀다.
12. 할아버지는 복고주의적 향수 때문인지 나에게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와 함께 배우면 좋았지만 할아버지는 상것들과 공부를 시킬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그러나 내가 너무 따분해하자 동갑내기 아이 둘을 불러 함께 가르쳤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토박이가 아닌, 들어온 집안의 아이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한문을 배웠고, 실천이 중하다는 말씀에 생활도 엄격해졌다. 일찍 일어나 찬물에 세수하고, 할아버지께 문안을 드린 후 요강과 타구통을 버리고 해가 떠오를 때까지 무릎을 꿇고 전날 배운 것을 외워 내야 했다. 할아버지는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한다면서 일가붙이가 보낸 것말고는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대소사를 치른 뒤 인사치레로 오는 음식을 맛만 보고는 혹평했다.
13. 아버지는 그런 면에서는 대범했다. 사람들에게 인정이 많았고, 소탈한 생활을 하셨다. 할아버지와 다른 점도 있었지만 예를 중시하는 태도는 일치했다. 어떤 점에서는 더 완고한 구석도 있었다. 자식들에 대한 훈육만은 엄격했고, 지하운동을 하는 중에도 침착하고 의연했다. 그런 아버지를 나는 늘 어려워했다. 철창에 갇힌 아버지에게 사식(私食)을 넣으러 가도 따뜻한 말 한 마디 없이 할아버지 말씀을 잘 듣느냐는 말만 했고, 아버지에게 단 한 번 배웠던 공부의 기억도 아버지에게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떨려서 붓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자 천상 연장 들고 생일이나 헐 손이구나.라고 싸늘하게 꾸짖고는 자리를 떠 버린 것이다. 이후 나는 얼마나 붓과 싸웠던가.
14. 과수원 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다시 한 번 옛 집을 본다. 이어 칠성바위 쪽으로 눈을 돌렸지만 기대했던 할아버지의 영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넋이 아직도 저 바위 언저리에 묵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잘 있어라 옛 집. 이렇게 중얼거리다 옛 집을 본다. 그 너머에 지는 해가 있었다.
♣ 작품해설 ♣
▶ 추억 더듬기, 상실의 아픔
<관촌 수필(冠村隨筆)>은 연작 소설이다. <일락서산(日落西山)>, <화무십일(花無十日)>, <행운유수(行雲流水)>, <녹수청산(綠水靑山)>, <공산토월(空山吐月)>, <관산추정(關山芻丁)>, <여요주서(與謠註序)>, <월곡후야(月谷後夜)>의 여덟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랜 타관 생활 끝에 고향에 들러 옛 터전을 둘러보며 떠오르는 감상을 위주로 쓰고 있다. 그가 제목이 수필이라고 쓴 것도 이 소설이 하나의 회고담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소설과 같은 인상을 주지 않지만, 지난날을 회고하는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 가운데 소설적 구조를 꾀하고 있다.
이 연작 소설의 중심은 6ㆍ25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타관 생활을 떠도는 주인공이 그 때를 회상하면서 불행을 초래한 시대적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는 데 있다. 전쟁은 집안과 주인공에게 엄청난 비극을 주었으며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의 내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것은 고향 상실의 아픔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고향에의 회귀 의식은 과거의 온전했던 생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의식과 동일성을 지닌다. 이 소설에서 자칫 봉건성이나 복고적 정신의 태도로 비난받을 만한 의식이 내비치는 것도 그 아픔에 대한 상대적 식이라 볼 수 있다.
▶ 우뚝 선 할아버지 - 가문의 정체성
<일락서산>은 주인공 나가 조상의 성묘를 위해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장항선 기차가 지나가는 대천읍(현 보령시) 변두리가 그의 옛 집이 있는 곳이다. 차창으로 옛 마을과 기찻길 주변의 풍경을 본다. 왕소나무는 죽고 없다. 400년이나 버티고 섰던 소나무가 사라진 것에서 비애를 느끼며 실향민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그와 왕소나무는 자신의 터전에서 뿌리 뽑힌 존재들이다. 왕소나무가 400년이나 우람하게 마을에 군림했듯 그의 집안도 대대로 명문(名門) 가문이었고 언덕에 떡하니 자리한 옛 집은 이씨 문중의 종가라기보다는 마을 전체의 종가처럼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집안은 망했고 그는 타관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소설의 방향은 이미 결정되고 있다. 그가 과거를 회고하는 것의 중심은 역시 왕소나무가 상징하듯이 바대로 권위로운 삶의 모습들이다. 현재가 그로 하여금 소외된 자로 인식하게 한다면 그의 정체성은 과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온전했던 삶이 파탄되었기 때문에 그는 현재도 내적인 불행을 겪고 있다. 이 작품은 과거의 삶에서 가졌던, 명문으로서의 명예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끝나면서부터는 바로 그 터앝머리였다. 나는 마음이 바빠 다그친 걸음으로 보리싹이 푸릇거리는 밭두둑으로 뛰어들었는데, 그 찰나, 가슴을 냅다 쥐어질린 충격과 함께 그 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지팡이에 굽은 허리를 의지한 할아버지가 당신의 헛묘(假墳墓)를 굽어보고 서 있었던 것이다. 항용 아끼시던 마가목(馬牙木)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는 역시 탕건으로 망건을 받쳐 쓰고, 공단 마고자 아래 허리춤에서는 안경집이 대롱거렸으며, 허연 수염을 바람결에 날리면서 구부정하게 서 있음이 천연하였다.
그 과거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어른은 할아버지다. 이 작품의 대부분은 할아버지에 대한 회상으로 되어 있다. 종산에 묻히신 산소를 오후 한때로 다녀올 수 없어 읍내에 거처를 정해 두고 옛 마을을 둘러본다. 거기서 할아버지의 환상을 만난다. 헛묘를 바라보고 계시던 예전의 모습이다. 여기서부터 할아버지의 삶이 소개되는데 온통 흠모의 감정으로 바쳐져 있다. 이것은 그의 의식의 저변이 할아버지와 동궤(同軌)하는 것을 암시해 준다. 할아버지는 명문 가문으로서의 명예심이 남달랐고, 품격을 지키는 삶을 살았으며, 의기와 선비로서의 긍지가 대단했던 분이다. 반상의 서열이 사라진 뒤였는데도 여전히 마을의 어른으로서 군림하고 계셨던 할아버지에게서 그가 배운 가르침은 보수적 정신 그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고스란히 이어받았고 부담으로 여기거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이런 면에서 그의 정신은 복고주의적이라 해도 좋다. 옛 집의 풍습이나 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화려했던 옛날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대조하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두 어른을 균형있게 평가하지만 이 소설의 핵은 여전히 할아버지에 두어져 있다. 할아버지에게 받은 교훈은 일종의 선민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할아버지와 여러 가지로 대조되었던 아버지는 반상 의식을 철폐하고 서민 대중의 편에 서서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한다. 그것을 할아버지가 좋게 받아들일리 만무하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자식 훈육에 있어서의 엄격함이다. 이것은 사실 아버지의 가치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가치 체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아버지에 대해 가진 잊지 못할 기억도 할아버지의 그것과 본질이 같다. 글씨를 배우다 아버지께 들었던 말에 주눅이 들어 공포감을 느낀 것은, 할아버지의 전통 의식과 다른 종류의 것에서 받은 것이 아니다. 결국나가 받은 교훈은 모두 봉건적 사고와 연관되는 것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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